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즈 제도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오시마 섬의 시모타카보라 유적(下高洞遺跡) 등을 볼 때 [[조몬 시대]]에도 사람이 살았던 모양. 원래는 [[스루가]] 국에 속했으나, 680년부터는 새로 설치된 [[이즈(일본)|이즈]] 국에 속하게 되었다. [[높으신 분들]]을 [[유배]]보내는 곳으로 유명했다. [[삼국지]]로 따지면 일남(日南)(현 베트남 지역) 같은 역할이다. 대표적인 사례가 전설적인 [[명궁]] [[미나모토노 타메토모]]. 그는 1156년 [[호겐의 난]] 당시 [[스토쿠 덴노|스토쿠 상황]] 편에 섰다가 패했다. [[고시라카와 덴노]]는 그의 활솜씨를 두려워하여 힘줄을 벤 후 이즈 제도의 [[오오시마]]에 유배를 보냈다. 그러나 다시 몸이 회복되어 활을 쏠 수 있게 된 타메토모는 자신의 힘으로 이즈 제도의 섬들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. 그러나 그의 지배는 폭압적이었고, 조정에서 타메토모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을 때에는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어 결국 그는 [[할복]]으로 생을 마감했다.[* 대개 일본 [[사무라이]]의 할복의 원조를 미나모토노 타메토모로 본다.][* [[류큐 왕국]]에서는 타메토모가 이 때 죽지 않았으며, 배를 타던 중 풍랑을 만나 [[오키나와]]에 도착, 그의 아들 [[구스쿠 시대#s-3.2|슌텐]](舜天)이 [[류큐]]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. 이 이야기는 근대에 일류동조론(日琉同祖論)으로 발전했다. 하지만 이즈 제도와 [[오키나와]] 사이의 거리가 1,300km나 된다는 걸 감안하면 전설에 가깝다.] [[전국시대(일본)|전국시대]]에는 [[오대로]]의 하나였던 [[우키타 히데이에]]가 [[세키가하라 전투]] 패전 후 하치조 섬에 유배당했다. 그곳에서 55년이나 살았다고. ~~그리고 하치조시마에서 헤·엄·쳐·서·왔·다!!~~[* [[2ch]]상에서 유명한 조크. 자세한 건 [[우키타 히데이에|해당 인물]] 문서 참고.] 말이 55년이지, 28살에 잡혀가서 83살에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았다. [[고니시 유키나가]]의 조선인 양녀인 [[오타 쥬리아]]는 카톨릭 신앙을 포기하지 않아 코즈시마 섬에서 유배생활을 했다. [[에도시대]]에는 막부 직할령이었으며, [[에도]]에서 물자를 많이 교류하였다. [[폐번치현]]을 거쳐 1876년에는 이즈 반도와 함께 [[시즈오카현]]이 되었으나, 1878년에 [[도쿄도|도쿄부]]로 편입되었다. 1785년에는 아오가시마 섬에서 화산분출이 일어났다. 200명 가량은 구조되었지만 132명의 주민들이 미처 구조되지 못해 목숨을 잃었고, 이후 50여 년간 무인도로 남아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